1.
살인범의 누명을 쓴 아들을 구하려는 엄마의 사투
2.
바보 도준(원빈 분)이 마을에서 일어난 여고생 살인사건의 유력한 피의자가 된다. 범행현장에 있었던 도준이 자기이름을 써놓은 골프공이 유력한 증거. 어머니(김혜자 분)는 아들의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서 변호사를 선임하지만, 변호사는 도준이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주장해서 병원에 4년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아들이 바보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단호히 거절하는 엄마.
도준의 엄마는 죽은 여고생의 친구들을 만나다가 그 아이의 핸드폰을 입수하게 된다. 여고생이 찍어놓은 핸드폰 사진을 도준에게 보여주자 그는 그날밤 고물장수를 현장에서 봤다고 말한다. 고물장수를 만난 도준의 엄마는 아들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그에게 듣는다. 그가 경찰에 전화를 하려하자 그를 죽이고 고물창고에 불을 지르는 엄마.
수용시설에서 탈출한 다운증후군 환자가 범인으로 지목이 되고 도준은 출소를 한다. 출소하던 길에 고물창고를 지나던 원빈은 불에 그슬린 엄마의 침도구를 찾아서 효도관광을 떠나는 엄마에게 준다. 망각의 침자리에 스스로 침을 놓고 관광버스에서 춤을추는 도준의 엄마.
3.
도준, 엄마, 여고생 모두 단일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도준은 바보라는 말을 들으면 흥분하고, 과거의 일들을 잘 기억을 못하지만, 유아기에 엄마가 동반자살을 하자며 자신에게 약을 먹였던 것은 정확하게 떠올리는 괴상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엄마는 아들의 일이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나서는 극단적 모성애의 상징이지만, 아들의 친구와 연인관계를 맺고 있있기도 하다. 치매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여고생은 가난한 형편에 생계를 꾸려야하는 상황에서 몸을 팔아왔고, 그것이 그녀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이렇게 무고한 세명이 우연히 만나고 그들의 의지와는 다르게 일들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술을 마시고 여고생을 따라걷던 도준이 무심결에 던진 '남자 싫어하냐'는 말은 그녀의 뇌관을 폭발시키고, 그녀가 한 '바보'라는 말은 도준을 폭발시킨다. 기억이 성치않은 도준은 술까지 마신 탓에 그날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아들이 위기에 처하자 엄마의 출동버튼이 눌려진다.
<마더>에는 뇌관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세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얽히게 되면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사건들이 담겨있다. 악당이 따로 존재하지도 않고,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에서 보여줬던 '시대탓'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비극적인 우연이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비극의 층위는 얇게 느껴지고, 어쩌면 일종의 게임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도준, 여고생, 도준친구(진구 분)의 캐릭터를 다층적으로 만들거나 딜레마를 설정하면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진행될 공산이 크다. 엄마의 캐릭터를 다층적이고 복잡하게 만드려는 선택은 옳았다고 생각이 되지만, 김혜자-진구의 밀애로 엄마의 캐릭터를 단순하지 않게 보이려하는 것은 물흐리기식의 설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들의 무고함을 확신하며 그것을 밝히려고 하던 엄마가 아들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후 벌어지는 이야기가 주축이 되었다면 엄마도 단순해 보이지 않았을테고 그녀의 딜레마도 그 드라마틱하게 전달이 되었을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마더>는 김혜자씨의 연기에 의존해서 가다가 관광버스에서 춤을 추는 장면으로 끝날게 아니라 그 장면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야 했다.
1.
연인을 남으로 데려오려고 노력하는 탈북자의 이야기
2.
만수대 예술단의 호른 주자인 선호(차승원 분). 그의 가족은 한국전쟁때 전사한 할어버지 덕택에 좋은 출신성분이 되어 평양에서 살고 있다. 그들에겐 비밀이 하나 있는데, 사실은 할아버지가 죽지 않고 남한에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서로를 간절히 사랑하지만, 엇갈림때문에 이어지지 않았던 사랑,이라는 통속적인 이야기에 분단이이라는 옷을 입혔다. 북한에서의 생활과 중국에서의 탈출시도 장면이 나열되는 방식으로 연출된 탓인지 보고나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다. 그 탓에 70억이나 썼다는 제작비는 어디로 갔지? 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 같다.
1.
뱀파이어가 된 신부
2.
상현(송강호 분)은 E.V.에 감염되어 죽어가는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순교자가 될 각오로 아프리카에서 진행되는 백신개발에 참여했다가 지원했던 40명 모두와 함께 죽게 된다. 마지막으로 수혈을 받은 정체불명의 피로 인하여 기적적으로 살아나지만 뱀파이어가 되는 상현.
돌아온 상현은 기적같이 살아난 탓에 그를 따르는 신도들이 생겨난다. 그 중에 한 아주머니(김해옥 분)가 찾아와 자신의 아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달라고 간청을 하는데, 어릴 때 친구인 강우(신하균 분)의 어머니이다. 이를 계기로 강우에 집에 드나들게 된 상현은 매주 수요일에 강우의 친구들과 함께 마작을 하는 ‘오아시스’의 멤버가 된다. 상현은 피를 갈망하는 것처럼 강우의 아내인 태주(김옥빈 분)이 육체를 탐닉하게 된다.
태주는 상현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고 거리를 두려고 하지만 그것도 잠시 둘은 광란의 사랑에 빠진다. 어느날 태주의 허벅지에 난 상처를 보고 분노한 상현은 그녀가 남편인 강우에게 학대를 당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강우를 유인해서 댐에서 빠뜨려 죽인다. 하지만, 강우의 시신은 며칠이 지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한편 강우의 어머니는 강우가 죽자 그의 환영을 보고 식물인간이 된다. 시어머니를 학대하는 태주를 말리다 상현이 태주를 때리자, 태주는 '강우도 자신을 때리지 않았다'고 소리를 지른다. 태주에게 속아 친구인 상우를 죽이게 되었음을 알게된 상현은 충동적으로 태주를 죽이지만, 그녀를 다시 살려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녀에게 자신의 피를 줘서 뱀파이어로 다시 살아나게 한다. 살아난 태주는 피를 위해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던 상현과는 달리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서 피를 마시고, 그 모습에 상현은 몹시 실망한다.
식물인간이 된 강우의 어머니는 ‘오아시스’의 모임이 있는 날 태주와 상현이 강우를 죽였음을 사람들에게 밝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모두 죽임을 당한다.
상현은 태주를 데리고 바닷가로 가서 뜨는 해를 바라보며 같이 죽는다.
3.
뱀파이어가 된 신부라는 설정으로부터 시작한 이야기는, 상현이 갖는 성직자로서의 윤리와 뱀파이어로서의 욕망의 충돌로 전개가 시작된다. 욕망은 그의 윤리의식을 압도하기 시작하고, 친구의 아내와 육체적인 사랑에 빠졌다가 친구를 죽이게 되고 그것이 그녀의 계략에 속아서 한 일이었음을 알고는 그녀마저 죽이는 죄악으로 이어진다. 상현에 의해 뱀파이어로 살아난 그녀가 벌이는 흡혈행각은 뱀파이어가 된 이후로 상현의 한 부분으로 그를 고통스럽게 했던 욕망과 원죄의 결정체로 보인다. 따라서, 상현이 태주와 함께 죽음을 택하는 것은 예상되는 귀결로 보인다.
박찬욱의 최근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스타일과 분위기는 제법 쓸만하지만 주제의 수준은 다소 도식적으로 보인다. 발, 뱀파이어, 죽은 후 다시 등장하는 인물, 몽유병 등등 20년 쯤 자주 봤던 여러가지 상징들이 난무한다. 거장의 작품스러운 분위기를 만드는데는 성공했다고 봐야할까? 칸의 심사위원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1. 귀휴를 나온 여죄수와 도주중인 범죄자의 사랑이야기.
2. 남편을 살해하고 복역중에 귀휴를 나와 어머니의 묘소에 성묘를 가던 김혜자는 기차에서 정동환을 만난다. 정동환은 자신에게 누명을 뒤집어 씌운 공범자를 찾아 강릉에 가는 길이었다. 사랑에 빠지는 두 사람. 하지만 김혜자에게는 시간이 없고 정동환에게는 해야할 일이 있다. 곧 돌아오겠다는 정동환을 호텔방에서 기다리던 김혜자는 그가 오지 않자 교도소가 있는 대구행 기차를 타러 떠난다. 뒤늦게 그녀를 찾아온 정동환과 기차안에서 다시 만나는 두 사람. 기차가 고장난 틈을 타 숲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
다음날 아침 교도서로 다시 돌아가는 김혜자에게 줄 옷가지들을 사러갔던 정동환은 그를 쫒던 형사들에게 잡히지만, 사정을 얘기하고 김혜자를 마지막으로 배웅할 수 있게 된다. 정동환이 쫒기는 범죄자이고 방금전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김혜자는 그녀가 출소하는 2년 후 호숫가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다.
그리고 2년 후. 늦은 가을 호수가의 그녀는 하루종일 그를 기다리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는다.
3. 이만희감독이 만든 1966년 <만추>가 원작. 1975년 김기영감독이 <육체의 약속>이란 제목으로 리메이크를 했고, 1981년에 김수용감독이 다시 한번 리메이크한 영화. 당시에는 배우들의 연기가 꽤 호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보기에는 몰입이 어려울 정도로 어색하다.
남편을 살해한 김혜자의 트라우마와 쫒기는 정동환의 불안감이 더 잘 살았더라면 그들의 절박한 사랑이 더 절절하게 느껴졌을 것 같지만, 영화에서는 두 배우의 신파조 연기에만 의존하고 있다. 강릉이라는 한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로드무비로 만들어졌으면 부초처럼 떠도는 그들의 정서가 잘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의 전사가 더 잘 살거나, 아예 구체적인 정보를 주지 않았으면 어떨을까 싶다. 지금은 좀 어정쩡하다.
1. 스페인내전에 참전한 한 영국공산당원의 이야기.
2. 죽은 할아버지의 유품에서 스페인내전에 참전했던 할아버지가 영국의 여자친구에게 보낸 편지와 여러가지 자료들이 발견된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데이빗 카. 영국공산당 당원이었던 데이빗은 스페인내전에 대한 영상을 보고 참전을 결심한다. 프랑스를 거쳐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로 가던 데이빗은 기차안에서 POUM(마르크스주의 통일 노동자당)에서 조직한 민병대에 합류하고, 며칠간의 간단한 군사훈련을 받은후에 아라곤전선으로 배치된다.
다양한 국적의 젊은이들로 구성된 부대는 부대장을 투표로 뽑을 정도로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대치국면의 전장에 있던 데이빗의 부대는 파시스트들에게 장악된 마을을 해방시키는 군사작전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IRA출신의 쿠간이 전사를 하고 그들은 쿠간의 장례식을 치르며 '인터내셔날가'를 함께 부른다.
농민들은 토지를 집단화할 것인지에 대한 토론을 벌인다. 데이빗이 속한 부대에 소속된 사람들도 입장을 이야기하고 장시간의 토론을 거쳐 투표로 집단화를 결정한다. 꼼뮨이 만들어진것이다.
POUM 민병대를 소련의 지원을 받는 공산당을 주축으로 한 군대에 편입시키려는 지침이 내려온다. 부대원들은 토론을 거쳐서 공산당의 제안을 거부하고 아무런 지원이 없더라도 민병대로 남기로 결정한다.
어느날 데이빗이 총기교육을 하다가 총기가 고장으로 터지면서 팔에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는 치료를 받기위해서 바르셀로나로 후송이 된다. 한동안의 치료를 마치고 쿠간의 애인이었던 블랑카가 알려준 숙소로 간 데이빗은 먼저 와있는 블랑카를 발견하고 둘은 사랑을 나눈다. 블랑카는 데이빗의 소지품중에 공산당군대의 군복을 발견한다. 데이빗은 치료를 받는 동안 영국공산당 당원으로서 공산당이 주도하는 국제여단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그 사실을 알고는 화를 내며 데이빗을 떠나가는 블랑카.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국제여단과 POUM-무정부주의 세력 사이에서 교전이 발생한다. 공산당쪽에서는 POUM과 무정부주의자들이 파시스트와 내통을 했다고 비방하고, POUM쪽에서는 공산당이 민병대의 총기를 빼앗고 해산을 시키는 것은 소련이 스페인내전에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대립을 하는데, 그러던 어느날 국제여단쪽에서 던진 수류탄에 POUM 소속 민병대가 희생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다음달 카페에서 POUM를 비난하는 병사들과 싸움을 벌인 데이빗은 공산당원증을 찢어버리고 다시 아라곤 전선으로 간다.
옛 전우들과 다시 만난지 얼마지나지 않아 그들은 진격작전을 펼친다. 공산당 군대가 후방지원을 약속했지만 그들은 나타나지 않고 데이빗의 부대원들은 피해만 입은채 후퇴를 한다. 한참이 지나서 나타난 공산당 소속 군인들은 민병대의 총기를 빼앗고 부대의 해산을 명령한다. 그 결정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데이빗의 부대원들. 그 와중에 블랑카가 공산당 군대의 병사에 쏜 총에 맞아서 죽는다.
데이빗은 그들이 해방시켰던 마을에 블랑카를 묻고 스페인을 떠난다.
데이빗의 장례식. 그의 손녀는 유품속에서 발견한 윌리엄 모리스의 싯구를 낭송한다.
"전투에 참여하라. 아무도 실패할 수 없다. 육신은 쇠하고 죽어가더라도 그 행위들은 모두 남아 승리를 이룰 것이므로"
3. 개인이 가지는 이상과 현실정치 사이의 대립을 다룬 영화.
같은 편끼리 분열하는 딜레마적인 상황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켄 로치의 또 다른 연출작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과 닮아 있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공화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의 인민전선 정부를 전복하려는 파시스트에 맞서기 위해 외국에서 달려와 총을 든 그들의 숭고한 이상이 스탈린주의자들의 정치적 계산에 휘둘리면서 벌어지는 비극이라고만 파악하기에는 영화가 가진 텍스트가 더 풍부해 보인다.
파시스트들의 동기는 정치적인 이해득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데 반해 사회주의자들의 동기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상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파시스트들은 정치적 득실만 맞으면 어떤 세력과도 합종연횡이 가능하다 따라서 그들의 세력은 한번 불어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곤 한다. 반면, 사회주의자들의 세력은 그들의 이상이 노선이 되고 시스템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여러가지로 분화되기 마련이다. 숭고한 이상으로 시작한 이들에게 이해득실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므로 입장의 차이는 점점 더 커져간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는 부패로 망하고, 좌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도 있는 것이 아닐까? <랜드 앤 프리덤>의 스탈린주의자들을 같은 편 안에 숨어들어온 악당으로만 보기엔 무리가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상주의자, 그들이 순수하기 때문에 그들은 분열하고 대립할 수 밖에 없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그리면서도 켄 로치는 윌리암 모리스의 시를 통해 혁명적 낙관주의를 설파한다. 그들은 승리한다. 그들의 이상이 옳기 때문이다.
1. 야생소년을 인간으로 교화시키려하는 한 교수의 분투.
2. 숲속에서 야생소년이 발견된다. 그 소식을 들은 이타르 교수(프랑수와 트뤼포 분)는 아이를 맡아서 키우겠다고 자청을 한다. 야생소년의 양육을 통해 인간의 지적발달 과정의 신비를 연구하려는 취지였다.
아이는 우선 직립보행부터 배우게 되고, 옷과 신발을 신고 사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인간이 내는 소리에 반응하는 것과 행동을 통한 의사표현, 그리고 문자에 대한 학습이 이어진다. 쉽지않은 일이지만 이타르교수와 그녀의 가정부의 지치지않는 노력과 따뜻한 보실핌속에 소년은 조금씩 인간의 모습을 갖춰간다. 그러다 마침내 부당한 처벌에 항의하는 단계에까지 도달하는 소년을 보며 이타르박사는 감동한다.
하지만, 야생의 생활을 잊지 못하는 것인지 소년은 늘 창문을 통해서 숲을 바라본다. 숲속에서 산책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소년은 이타르박사에게 산책을 가지고 행동으로 재촉을 하지만 마침 이타르박사의 류마티스관절염이 재발을 해서 산책을 갈 수 없게되자 가출을 하고 만다.
숲속을 헤메던 소년은 남의 집에 들어가서 닭을 훔치다가 실패하고 도망을 친다. 다음날까지 소년이 돌아오지 않자 이타르교수는 교육은 효과가 있었지만 소년이 집에서 뛰쳐나갔다는 내용을 편지를 정부당국자에게 쓴다. 편지를 다 썼을 무렵 이타르박사앞에 소년이 제발로 찾아온다.
3. 어린시절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는 감독이 이타르교수로 나와서 열연을 하는 점이 중요하게 언급되지만 영화 외적인 평가요소일 뿐이다.
(아마도) 부모에게 버려져서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자라지 못한 야성의 소년을 교화시킨다는 얘기는 그 자체로만 봤을때는 그다지 흥미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차라리 '야생소년에게 문명을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가'는 이야기가 되었다면 더 흥미로운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이타르교수에 감정이입을 해서 영화는 따라가게되는 관객이 입장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상당히 평면적일 수 밖에 없다. 왜냐면, 그의 의지와 욕망은 초지일관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 지점이 이야기 구조상의 실수라고 할 수 있겠다.
어쨌거나 트뤼포의 연기는 훌륭했고, 마지막장면인 야생소년의 귀환이 교화의 성공으로만 읽힐 수 있는게 아니라서 파고들어 따지자면 여러가지 의미를 찾을 수도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