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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쇄살인범을 잡았지만 수사과정에서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했다고 해서 무죄방면된 범인을 직접 처단하는 형사의 이야기

2. 
해리 캘러한(클린트 이스트우드 분)은 거칠기로 소문난 샌프란시스코의 형사로 더티 해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한 여인이 건물 옥상에서 수영을 하던 중 다른 건물에서 날라온 총탄에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한 직후, 범인은 샌프란시스코 경찰에 당장 돈을 주지 않으면 매일 한 명씩 사람을 죽이겠다고 협박을 하고, 시장은 범인이 원하는 돈을 주고 사건을 무마하려고 한다.

범인이 지시한대로 신문에 작은 광고를 내서 돈을 주겠다고 알리지만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단서에 범인은 이번엔 꼬마아이를 총으로 쏴 죽인다. 범인의 살인시도가 이어지고 그를 잡지 못한 와중에 이번엔 여자아이를 납치한 범인이 돈을 주지 않으면 소녀를 죽이겠다고 협박을 하자 시장과 경찰서장은 캘러한을 시켜서 돈을 건네라고 명령한다.

한편 캘러한은 파트너인 치코와 짜고 돈을 건네는 와중에 범인을 잡을 계획을 세우지만, 범인에게 총상만 입혔을뿐 결국 잡지 못한다. 명령대로 하지 않은 캘러한은 시장과 경찰서장에게 비난을 듣는다. 허벅지에 총상을 입은 사람을 치료했다는 의사의 신고로 범인을 잡는 캘러한. 하지만, 범인이 있던 경기장에 압수수색 영장없이 무단으로 들어갔고, 체포과정에서 범인을 구타했다는 이유로 범인은 무죄방면이 되고, 오히려 캘러한이 검찰에 기소가 되는 상황이 되고 만다.

이번엔 스쿨버스를 탈취해서 아이들을 인질로 돈과 도망갈 비행기를 요구하는 범인. 캘러한은 범인을 추적해 그의 상징인 매그넘 권총으로 범인을 쏴서 처단하고 경찰 뱃지를 던져 버린다.

3.
흉악한 악당을 처단하는 미국식 영웅이야기. 

정의감 강한 폭력적인 형사 캐릭터의 원형은, 가깝게는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 시리즈까지 무수히 많이 재생산이 되었다. 범인의 지시에 따라 샌프란시스코를 생고생하며 뛰어다니는 시퀀스도 여러 영화들에서 많이 사용했던  흥미로운 장면들이다.

범죄자에게는 어떤 동기도 없고 단지 악마일 뿐이고 그래서 처단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시선도 위험해 보이지만, 피의자의 인권도 보호되어야하고 수사는 적법한 과정에 의해서 이뤄져야한 한다는 인권의 기본 상식이 결과적으로 악마들을 보호할 뿐이라고 주장은 어이가 없게 느껴진다.

범인을 잡았지만 풀어줘야하는 상황이 너무 후반에 위치해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희생자들이 계속 생겨날 것을 뻔히 알지만 오히려 수사과정의 불법행위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캘러한 형사의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잘 묘사되었더라면 영화가 훨씬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한다. '소설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일 뿐이다'라는 안톤 체홉의 말처럼 주장과 교훈을 앞세우기 전에 범인이 풀려나는 것을 지켜봐야하는 캘러한의 심정을 통해서 사법제도와 한 인간의 선의 충돌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였다면 훨씬 더 흥미로운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1. 
깡패가 액션영화 배우가 된다.

2.
액션영화전문 배우인 장수타(강지환 분)은 액션장면에서 상대배우를 실제로 때려서 촬영이 중단되는 사건을 일으킨다. 그의 상대역을 하려는 배우가 없자 난처한 상황에 몰린 수타는 며칠전 룸살롱에서 술을 마시다가 시비가 붙었던 이강패(소지섭 분)을 떠올리며 그에게 상대역을 제안한다. 강패는 영화의 액션장면을 실제로 하자는 조건을 내걸며 수타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구속수감되어 재판을 받고 있던 회장의 집에서 이면계약서와 회계장부가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회장은 자신의 휘하에 있던 박사장의 소행으로 단정짓고 그를 제거할 것을 강패에게 지시한다. 박사장을 잡아서 바다에 수장시켜려던 강패는 갑자기 마음을 바꿔 그를 풀어준다.

수타는 여자친구인 은선(장희진 분)과 차안에서 섹스하는 장면을 몰래 찍은 이들에게 협박을 당한다. 강패에게 차를 넘기고 돈을 얻은 수타는 협박범들을 만나서 섹스비디오의 원본을 돌려 받으려고 하지만 강패가 중간에 끼어들면서 일을 그르치게 된다. 또다시 만난 협박범들은 수타의 돈만 받고 도망을 치는데, 이때 나타난 강패 무리들을 피하려다 기둥을 받고 죽게되고 이실장(박수영 분)은 섹스비디오를 뺏어서 부셔버린다.

회장의 재판을 며칠 앞두고 있는 때에 박사장이 다시 나타나고, 회장은 강패가 면회를 와도 만나주지 않는다. 촬영을 하지 않겠다고 제작팀에게 이야기하는 강패. 강패는 박사장 무리에게 당해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박사장은 강패를 살려준다. 한편, 몰래 찍은 섹스비디오로 수타에게 돈을 받으려고 했던 사람은 수타의 매니저인 이실장으로 밝혀진다. 수타는 은선과 공개 데이트를 한다.

죽다 살아난 강패는 제작팀을 찾아가 마지막 장면을 찍겠다고 말한다. 마지막 장면, 갯벌에서의 사투끝에 수타가 강패를 이긴다. 성공적으로 촬영을 마쳤다고 좋아하며 쫑파티를 하자는 팀들을 뒤로하고 인사동을 향하는 강패. 그곳에서 불상을 사가지고 나오는 박사장을 불상으로 때려서 죽이고, 강패를 따라왔던 수타는 그 장면을 목격한다.

3.
김기덕감독의 시나리오가 매번 그렇듯 관념적인 설정과 도식적인 캐릭터가 조금은 어설퍼 보인다. 여배우인 미나(홍수현 분)를 강간하는 장면을 촬영하는 현장에서 강패가 실제로 섹스를 하는 장면까지는 넘어가 줄 수 있다고 해도, 강간을 당한 미나가 강패를 좋아하게 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김기덕 영화의 여인들을 떠올리며 실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현실을 흉내내야하는 숙명을 가진 영화에게 현실은 컴플렉스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비전문 배우를 고용한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에 환호했고,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경계를 허문 일련의 영화들에 환호했던 이유도 영화가 가진 컴플렉스에서 시작된 것이었고, 헐리웃 영화의 그럴듯한 컴퓨터그래픽 화면에 열광을 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영화다>는 영화같은 현실을 사는 강패와 현실같은 액션영화를 꿈꾸는 수타와 감독(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욕망)을 통해서 영화가 가진 컴플렉스와 욕망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만약 ~이라면"류의 컨셉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평단의 호평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한다.

영화의 공간에 들어온 타자(강패)의 이야기 아니라, 영화와 현실 경계가 허물어지는 상황에 몰린 배우의 이야기였으면 어땠을까? 아벨 페라라의 <스네이크 아이>나 관금붕의 <완령옥> 처럼...



1.
좀비바이러스가 번진 동네에서 악당들과 맞서 싸우는 기관총다리의 여자.

2.
반란을 일으킨 군인들이 과학자인 에비로 부터 다량의 DC2 가스를 구한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DC2로 인한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고, 좀비로 변하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그 가스를 흡입해야만 한다. 반란군인의 대장은 DC2 가스를 마을 전체에 살포한 후 감염되지 않고 살아남는 사람을 찾아서 치료제를 만들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가스에 노출된 주민들은 좀비로 변하고 좀비들은 사람들을 물어뜯어서 그들 또한 좀비가 된다. 섹시댄서였다가 좀비에게 다리를 먹혀서 외다리가 된 체리는 전 남자친구 레이의 도움으로 한 쪽 발에 기관총을 달고 그 둘을 비롯한 몇명의 생존자들과 함께 좀비가 된 사람들과 악당군인들에 대항해서 싸우다가 멕시코로 도피를 한다.

* 자세한 영문 플롯 서머리는 이곳에서 확인하세요.

3.
미국에서는 <데스 프루프>와 함께 <그라인드 하우스>로 동시상영이 되었다.

'헤어진 연인이 악당들과 맞서 싸워 이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사랑이 이뤄진다.' 라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에 B무비의 취향들로 살을 입힌 영화.



1.
15년전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다 죽은 장남 준페이의 기일에 모인 가족들의 화해.

2.
둘째 아들 료타는 재혼한 아내와 함께 아버지의 집을 찾는다. 은퇴한 의사인 아버지는 료타에게 무심하게 대한다. 준페이는 가업을 이어 의사가 되려했고, 료타는 집을 나가 미술복원사가 되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료타를 원망하고 있었다. 준페이가 구한 아이는 스무살이 넘긴 청년이 되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고있다는 그가 떠나자, 표타의 아버지는 저런 의미없는 녀석을 대신해 준페이가 죽었다는게 억울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의미있는 삶과 의미없는 삶을 구분하는 아버지에게 반발하는 료타.

아버지의 외도와 어머니가 여전히 준페이가 살려준 아이를 원망하고 있다는 사실 등등 평범한 하루동안의 일을 통해서 각각의 인물이 가지고 있는 원망과 아쉬움이 잔잔히 묘사된다. 그리고 3년후 료타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나레이션으로 영화는 끝난다.

3.
1시간 50분이 넘는 분량에 비해 극적인 사건이 등장하거나, 과장된 감정이 분출되지도 않는 말 그대로 잔잔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전철을 타고 있다. 그들이 남자의 부모님이 살고 있는 집에 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려준다. 뒤이어 그 여자는 전남편이 죽자 아이를 데리고 그 남자와 결혼을 했음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들이 남자의 집에 온 이유는 장례식이 있어서이고, 그 장례식은 남자의 형의 장례식이며, 한 뚱뚱한 남자의 방문을 통해 남자의 형이 15년전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다 죽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어지는, 아버지의 외도를 목격하고 돌아오던 날 어머니가 샀던 레코드에 얽힌 사연 등 여러가지 사실들이 하나씩 하나씩 보여지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구성이 되어있다. 

무슨일이 있었는지를 궁금하게 해놓고 하나씩 밝혀가는 방식의 서사를 잘 이용하고 있으며, 이런 이야기 구조가 결정적이고 핵심적인 큰 비밀하나를 설정해 놓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경향이 많은데 비해 거대한 설정없이 이야기 전개의 도구로만 활용한 기법이 대단하다.

멜로영화를 이런 이야기 기법으로 풀어봐도 재밌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더, Mother, 2009

영화 2009/07/02 01:30


1.
살인범의 누명을 쓴 아들을 구하려는 엄마의 사투

2.
바보 도준(원빈 분)이 마을에서 일어난 여고생 살인사건의 유력한 피의자가 된다. 범행현장에 있었던 도준이 자기이름을 써놓은 골프공이 유력한 증거. 어머니(김혜자 분)는 아들의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서 변호사를 선임하지만, 변호사는 도준이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주장해서 병원에 4년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아들이 바보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단호히 거절하는 엄마.

도준의 엄마는 죽은 여고생의 친구들을 만나다가 그 아이의 핸드폰을 입수하게 된다. 여고생이 찍어놓은 핸드폰 사진을 도준에게 보여주자 그는 그날밤 고물장수를 현장에서 봤다고 말한다. 고물장수를 만난 도준의 엄마는 아들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그에게 듣는다. 그가 경찰에 전화를 하려하자 그를 죽이고 고물창고에 불을 지르는 엄마.

수용시설에서 탈출한 다운증후군 환자가 범인으로 지목이 되고 도준은 출소를 한다. 출소하던 길에 고물창고를 지나던 원빈은 불에 그슬린 엄마의 침도구를 찾아서 효도관광을 떠나는 엄마에게 준다. 망각의 침자리에 스스로 침을 놓고 관광버스에서 춤을추는 도준의 엄마.

3.
도준, 엄마, 여고생 모두 단일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도준은 바보라는 말을 들으면 흥분하고, 과거의 일들을 잘 기억을 못하지만, 유아기에 엄마가 동반자살을 하자며 자신에게 약을 먹였던 것은 정확하게 떠올리는 괴상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엄마는 아들의 일이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나서는 극단적 모성애의 상징이지만, 아들의 친구와 연인관계를 맺고 있있기도 하다. 치매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여고생은 가난한 형편에 생계를 꾸려야하는 상황에서 몸을 팔아왔고, 그것이 그녀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이렇게 무고한 세명이 우연히 만나고 그들의 의지와는 다르게 일들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술을 마시고 여고생을 따라걷던 도준이 무심결에 던진 '남자 싫어하냐'는 말은 그녀의 뇌관을 폭발시키고, 그녀가 한 '바보'라는 말은 도준을 폭발시킨다. 기억이 성치않은 도준은 술까지 마신 탓에 그날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아들이 위기에 처하자 엄마의 출동버튼이 눌려진다.

<마더>에는 뇌관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세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얽히게 되면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사건들이 담겨있다. 악당이 따로 존재하지도 않고,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에서 보여줬던 '시대탓'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비극적인 우연이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비극의 층위는 얇게 느껴지고, 어쩌면 일종의 게임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도준, 여고생, 도준친구(진구 분)의 캐릭터를 다층적으로 만들거나 딜레마를 설정하면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진행될 공산이 크다. 엄마의 캐릭터를 다층적이고 복잡하게 만드려는 선택은 옳았다고 생각이 되지만, 김혜자-진구의 밀애로 엄마의 캐릭터를 단순하지 않게 보이려하는 것은 물흐리기식의 설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들의 무고함을 확신하며 그것을 밝히려고 하던 엄마가  아들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후 벌어지는 이야기가 주축이 되었다면 엄마도 단순해 보이지 않았을테고 그녀의 딜레마도 그 드라마틱하게 전달이 되었을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마더>는 김혜자씨의 연기에 의존해서 가다가 관광버스에서 춤을 추는 장면으로 끝날게 아니라 그 장면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야 했다.





1. 


연인을 남으로 데려오려고 노력하는 탈북자의 이야기

2.
만수대 예술단의 호른 주자인 선호(차승원 분). 그의 가족은 한국전쟁때 전사한 할어버지 덕택에 좋은 출신성분이 되어 평양에서 살고 있다. 그들에겐 비밀이 하나 있는데, 사실은 할아버지가 죽지 않고 남한에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어느날 선호의 할아버지가 보낸 편지에는, 사람을 보낼테니 가족 모두 중국을 통해 남으로 오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선호는 연인인 연화(조이진 분)을 데려가고 싶지만 가족이 많아서 여의치가 않자, 남에 가면 꼭 사람을 보내서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을 한다.

강을 건너 중국에 다다른 선호의 가족은 남한으로 가기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하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한참이 지나서 독일대사관에 잠입을 하는 선호가족. 어렵게 남한에 왔지만, 그 사이 선호의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후였다. 아버지 형제들의 박대가 이어지고, 선호의 가족은 조그만 식당을 내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간다. 

선호는 정착자금으로 받은 돈을 모두 브로커에게 건내고 북에있는 연화를 데려와 달라고 부탁을 하지만, 그 이후로 브로커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고는 브로커를 찾아다니는 선호. 결국 찾아내지만 흠씬 두드려 맞기만 한다. 피투성이가 된 선호를 우연히 돌보게 된 경주(심혜진 분)의 보살핌 속에 선호는 돈을 벌기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미친듯이 일을 한다. 그러던 중, 연화가 북에서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듣는 선호. 얼마후 그는 경주와 결혼을 한다.

대규모 탈북자가 중국에서 남한으로 오고 있다는 보도를 보던 선호는 한 무리의 사람들 중에 연화를 발견한다. 하나원을 찾아가서 연화를 만난 선호는 자신이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를 차마 하지 못한다. 하나원에서 TV를 보던 연화는 선호의 가족이 하는 북한식당 소개 프로그램에서 선호의 아내로 경주가 소개되자 망연자실해 한다. 연화가 그 프로그램을 봤을거라 생각하고 한밤중에 하나원을 찾아가 담을 넘는 선호. 막상 연화를 만나자 '나는 그 예전의 선호가 아니다'라고 마음에도 없는 날선 말을 한다.

연화는 하나원을 출소한 날 선호의 가족이 하는 북한식당을 찾아가지만, 식당을 정리하고 있던 경주의 얼굴만 확인하고 돌아가는 길에 선호를 마주친다. 속초의 허름한 여관에 있는 선호와 연화. 그들의 첫날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자 연화는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선호의 가족이 가족사진을 찍으러 간 사진관에서 며칠전 있었다는 선화의 결혼식 사진을 본다. 선화가 그녀의 담당형사와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3.
서로를 간절히 사랑하지만, 엇갈림때문에 이어지지 않았던 사랑,이라는 통속적인 이야기에 분단이이라는 옷을 입혔다. 북한에서의 생활과 중국에서의 탈출시도 장면이 나열되는 방식으로 연출된 탓인지 보고나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다. 그 탓에 70억이나 썼다는 제작비는 어디로 갔지? 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 같다.

연화의 남한행을 중심으로 전반부는 연화를 데려오고자하는 선호의 의지. 후반부는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을 만나러 온 연화에게 결혼한 사실을 숨겨야 하는 선호의 딜레마로 구성이 되어있다. 스토리라인은 깔끔하게 짜여져 있지만, 이야기가 임팩트 없이 설렁설렁 흘러간다는 느낌이 드는 영화였다. 예컨대, 속초에서 하룻밤을 보내게된 선호와 연화의 장면은 좀 더 정서적인 디테일들이 살아있어야 했다.

좋은 감독을 만났더라면 1/4의 예산으로 훨씬 더 감동적인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이런 의심을 떨치기 쉽지 않은 영화다.

박쥐, Thirst, 2009

영화 2009/06/15 22:03



1.
뱀파이어가 된 신부

2.
상현
(송강호 분) E.V.에 감염되어 죽어가는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순교자가 될 각오로 아프리카에서 진행되는 백신개발에 참여했다가 지원했던 40명 모두와 함께 죽게 된다. 마지막으로 수혈을 받은 정체불명의 피로 인하여 기적적으로 살아나지만 뱀파이어가 되는 상현.

 

돌아온 상현은 기적같이 살아난 탓에 그를 따르는 신도들이 생겨난다. 그 중에 한 아주머니(김해옥 분)가 찾아와 자신의 아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달라고 간청을 하는데, 어릴 때 친구인 강우(신하균 분)의 어머니이다. 이를 계기로 강우에 집에 드나들게 된 상현은 매주 수요일에 강우의 친구들과 함께 마작을 하는 오아시스의 멤버가 된다. 상현은 피를 갈망하는 것처럼 강우의 아내인 태주(김옥빈 분)이 육체를 탐닉하게 된다.

 

태주는 상현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고 거리를 두려고 하지만 그것도 잠시 둘은 광란의 사랑에 빠진다. 어느날 태주의 허벅지에 난 상처를 보고 분노한 상현은 그녀가 남편인 강우에게 학대를 당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강우를 유인해서 댐에서 빠뜨려 죽인다. 하지만, 강우의 시신은 며칠이 지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한편 강우의 어머니는 강우가 죽자 그의 환영을 보고 식물인간이 된다시어머니를 학대하는 태주를 말리다 상현이 태주를 때리자, 태주는 '강우도 자신을 때리지 않았다'고 소리를 지른다. 태주에게 속아 친구인 상우를 죽이게 되었음을 알게된 상현은 충동적으로 태주를 죽이지만, 그녀를 다시 살려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녀에게 자신의 피를 줘서 뱀파이어로 다시 살아나게 한다. 살아난 태주는 피를 위해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던 상현과는 달리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서 피를 마시고, 그 모습에 상현은 몹시 실망한다.

 

식물인간이 된 강우의 어머니는 오아시스의 모임이 있는 날 태주와 상현이 강우를 죽였음을 사람들에게 밝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모두 죽임을 당한다.

 

상현은 태주를 데리고 바닷가로 가서 뜨는 해를 바라보며 같이 죽는다.

3.

뱀파이어가 된 신부라는 설정으로부터 시작한 이야기는, 상현이 갖는 성직자로서의 윤리와 뱀파이어로서의 욕망의 충돌로 전개가 시작된다. 욕망은 그의 윤리의식을 압도하기 시작하고, 친구의 아내와 육체적인 사랑에 빠졌다가 친구를 죽이게 되고 그것이 그녀의 계략에 속아서 한 일이었음을 알고는 그녀마저 죽이는 죄악으로 이어진다. 상현에 의해 뱀파이어로 살아난 그녀가 벌이는 흡혈행각은 뱀파이어가 된 이후로 상현의 한 부분으로 그를 고통스럽게 했던 욕망과 원죄의 결정체로 보인다. 따라서, 상현이 태주와 함께 죽음을 택하는 것은  예상되는 귀결로 보인다.


박찬욱의 최근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스타일과 분위기는 제법 쓸만하지만 주제의 수준은 다소 도식적으로 보인다. 발, 뱀파이어, 죽은 후 다시 등장하는 인물, 몽유병 등등 20년 쯤 자주 봤던 여러가지 상징들이 난무한다. 거장의 작품스러운 분위기를 만드는데는 성공했다고 봐야할까? 칸의 심사위원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1. 귀휴를 나온 여죄수와 도주중인 범죄자의 사랑이야기.

2. 남편을 살해하고 복역중에 귀휴를 나와 어머니의 묘소에 성묘를 가던 김혜자는 기차에서 정동환을 만난다. 정동환은 자신에게 누명을 뒤집어 씌운 공범자를 찾아 강릉에 가는 길이었다. 사랑에 빠지는 두 사람. 하지만 김혜자에게는 시간이 없고 정동환에게는 해야할 일이 있다. 곧 돌아오겠다는 정동환을 호텔방에서 기다리던 김혜자는 그가 오지 않자 교도소가 있는 대구행 기차를 타러 떠난다. 뒤늦게 그녀를 찾아온 정동환과 기차안에서 다시 만나는 두 사람. 기차가 고장난 틈을 타 숲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

다음날 아침 교도서로 다시 돌아가는 김혜자에게 줄 옷가지들을 사러갔던 정동환은 그를 쫒던 형사들에게 잡히지만, 사정을 얘기하고 김혜자를 마지막으로 배웅할 수 있게 된다. 정동환이 쫒기는 범죄자이고 방금전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김혜자는 그녀가 출소하는 2년 후 호숫가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다.

그리고 2년 후. 늦은 가을 호수가의 그녀는 하루종일 그를 기다리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는다.

3. 이만희감독이 만든 1966년 <만추>가 원작. 1975년 김기영감독이 <육체의 약속>이란 제목으로 리메이크를 했고, 1981년에 김수용감독이 다시 한번 리메이크한 영화. 당시에는 배우들의 연기가 꽤 호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보기에는 몰입이 어려울 정도로 어색하다.

남편을 살해한 김혜자의 트라우마와 쫒기는 정동환의 불안감이 더 잘 살았더라면 그들의 절박한 사랑이 더 절절하게 느껴졌을 것 같지만, 영화에서는 두 배우의 신파조 연기에만 의존하고 있다. 강릉이라는 한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로드무비로 만들어졌으면 부초처럼 떠도는 그들의 정서가 잘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의 전사가 더 잘 살거나, 아예 구체적인 정보를 주지 않았으면 어떨을까 싶다. 지금은 좀 어정쩡하다.




1. 스페인내전에 참전한 한 영국공산당원의 이야기.


2. 죽은 할아버지의 유품에서 스페인내전에 참전했던 할아버지가 영국의 여자친구에게 보낸 편지와 여러가지 자료들이 발견된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데이빗 카. 영국공산당 당원이었던 데이빗은 스페인내전에 대한 영상을 보고 참전을 결심한다. 프랑스를 거쳐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로 가던 데이빗은 기차안에서 POUM(마르크스주의 통일 노동자당)에서 조직한 민병대에 합류하고, 며칠간의 간단한 군사훈련을 받은후에 아라곤전선으로 배치된다.

다양한 국적의 젊은이들로 구성된 부대는 부대장을 투표로 뽑을 정도로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대치국면의 전장에 있던 데이빗의 부대는 파시스트들에게 장악된 마을을 해방시키는 군사작전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IRA출신의 쿠간이 전사를 하고 그들은 쿠간의 장례식을 치르며 '인터내셔날가'를 함께 부른다.

농민들은 토지를 집단화할 것인지에 대한 토론을 벌인다. 데이빗이 속한 부대에 소속된 사람들도 입장을 이야기하고 장시간의 토론을 거쳐 투표로 집단화를 결정한다. 꼼뮨이 만들어진것이다.

POUM 민병대를 소련의 지원을 받는 공산당을 주축으로 한 군대에 편입시키려는 지침이 내려온다. 부대원들은 토론을 거쳐서 공산당의 제안을 거부하고 아무런 지원이 없더라도 민병대로 남기로 결정한다.

어느날 데이빗이 총기교육을 하다가 총기가 고장으로 터지면서 팔에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는 치료를 받기위해서 바르셀로나로 후송이 된다. 한동안의 치료를 마치고 쿠간의 애인이었던 블랑카가 알려준 숙소로 간 데이빗은 먼저 와있는 블랑카를 발견하고 둘은 사랑을 나눈다. 블랑카는 데이빗의 소지품중에 공산당군대의 군복을 발견한다. 데이빗은 치료를 받는 동안 영국공산당 당원으로서 공산당이 주도하는 국제여단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그 사실을 알고는 화를 내며 데이빗을 떠나가는 블랑카.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국제여단과 POUM-무정부주의 세력 사이에서 교전이 발생한다. 공산당쪽에서는 POUM과 무정부주의자들이 파시스트와 내통을 했다고 비방하고, POUM쪽에서는 공산당이 민병대의 총기를 빼앗고 해산을 시키는 것은 소련이 스페인내전에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대립을 하는데, 그러던 어느날 국제여단쪽에서 던진 수류탄에 POUM 소속 민병대가 희생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다음달 카페에서 POUM를 비난하는 병사들과 싸움을 벌인 데이빗은 공산당원증을 찢어버리고 다시 아라곤 전선으로 간다.

옛 전우들과 다시 만난지 얼마지나지 않아 그들은 진격작전을 펼친다. 공산당 군대가 후방지원을 약속했지만 그들은 나타나지 않고 데이빗의 부대원들은 피해만 입은채 후퇴를 한다. 한참이 지나서 나타난 공산당 소속 군인들은 민병대의 총기를 빼앗고 부대의 해산을 명령한다. 그 결정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데이빗의 부대원들. 그 와중에 블랑카가 공산당 군대의 병사에 쏜 총에 맞아서 죽는다.

데이빗은 그들이 해방시켰던 마을에 블랑카를 묻고 스페인을 떠난다.

데이빗의 장례식. 그의 손녀는 유품속에서 발견한 윌리엄 모리스의 싯구를 낭송한다.

"전투에 참여하라.
아무도 실패할 수 없다. 육신은 쇠하고 죽어가더라도 그 행위들은 모두 남아 승리를 이룰 것이므로"


3. 개인이 가지는 이상과 현실정치 사이의 대립을 다룬 영화. 

같은 편끼리 분열하는 딜레마적인 상황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켄 로치의 또 다른 연출작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과 닮아 있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공화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의 인민전선 정부를 전복하려는 파시스트에 맞서기 위해 외국에서 달려와 총을 든 그들의 숭고한 이상이 스탈린주의자들의 정치적 계산에 휘둘리면서 벌어지는 비극이라고만 파악하기에는 영화가 가진 텍스트가 더 풍부해 보인다.

파시스트들의 동기는 정치적인 이해득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데 반해 사회주의자들의 동기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상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파시스트들은 정치적 득실만 맞으면 어떤 세력과도 합종연횡이 가능하다 따라서 그들의 세력은 한번 불어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곤 한다. 반면, 사회주의자들의 세력은 그들의 이상이 노선이 되고 시스템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여러가지로 분화되기 마련이다. 숭고한 이상으로 시작한 이들에게 이해득실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므로 입장의 차이는 점점 더 커져간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는 부패로 망하고, 좌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도 있는 것이 아닐까? <랜드 앤 프리덤>의 스탈린주의자들을 같은 편 안에 숨어들어온 악당으로만 보기엔 무리가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상주의자, 그들이 순수하기 때문에 그들은 분열하고 대립할 수 밖에 없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그리면서도 켄 로치는 윌리암 모리스의 시를 통해 혁명적 낙관주의를 설파한다. 그들은 승리한다. 그들의 이상이 옳기 때문이다.




1. 야생소년을 인간으로 교화시키려하는 한 교수의 분투.

2. 숲속에서 야생소년이 발견된다. 그 소식을 들은 이타르 교수(프랑수와 트뤼포 분)는 아이를 맡아서 키우겠다고 자청을 한다. 야생소년의 양육을 통해 인간의 지적발달 과정의 신비를 연구하려는 취지였다.

아이는 우선 직립보행부터 배우게 되고, 옷과 신발을 신고 사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인간이 내는 소리에 반응하는 것과 행동을 통한 의사표현, 그리고 문자에 대한 학습이 이어진다. 쉽지않은 일이지만 이타르교수와 그녀의 가정부의 지치지않는 노력과 따뜻한 보실핌속에 소년은 조금씩 인간의 모습을 갖춰간다. 그러다 마침내 부당한 처벌에 항의하는 단계에까지 도달하는 소년을 보며 이타르박사는 감동한다.

하지만, 야생의 생활을 잊지 못하는 것인지 소년은 늘 창문을 통해서 숲을 바라본다. 숲속에서 산책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소년은 이타르박사에게 산책을 가지고 행동으로 재촉을 하지만 마침 이타르박사의 류마티스관절염이 재발을 해서 산책을 갈 수 없게되자 가출을 하고 만다.

숲속을 헤메던 소년은 남의 집에 들어가서 닭을 훔치다가 실패하고 도망을 친다. 다음날까지 소년이 돌아오지 않자 이타르교수는 교육은 효과가 있었지만 소년이 집에서 뛰쳐나갔다는 내용을 편지를 정부당국자에게 쓴다. 편지를 다 썼을 무렵 이타르박사앞에 소년이 제발로 찾아온다.

3. 어린시절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는 감독이 이타르교수로 나와서 열연을 하는 점이 중요하게 언급되지만 영화 외적인 평가요소일 뿐이다.

(아마도) 부모에게 버려져서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자라지 못한 야성의 소년을 교화시킨다는 얘기는 그 자체로만 봤을때는 그다지 흥미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차라리 '야생소년에게 문명을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가'는 이야기가 되었다면 더 흥미로운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이타르교수에 감정이입을 해서 영화는 따라가게되는 관객이 입장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상당히 평면적일 수 밖에 없다. 왜냐면, 그의 의지와 욕망은 초지일관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 지점이 이야기 구조상의 실수라고 할 수 있겠다.

어쨌거나 트뤼포의 연기는 훌륭했고, 마지막장면인 야생소년의 귀환이 교화의 성공으로만 읽힐 수 있는게 아니라서 파고들어 따지자면 여러가지 의미를 찾을 수도 있겠다.